두 세날 사이에서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막연히 이름만 들었던 분에게 마음이 크게 끌린 것은 1986년이었습니다. 다니던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가 거의 홀로 책임지고 만들었던 <성서조선>을 조금씩 꺼내 보면서였습니다. 이 학교에 <성서조선>이 다 있었구나... 하는 감탄으로 시작된 독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김교신, 신앙의 반 사각화에 관하여>라는 작은 아티클을 적어 후배들이 만드는 논문집에 기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거의 35년을 지나, <자-신학화 포럼>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시 그를 만나는 중, 이번에는 그의 일기만 따로 모은 책을 통해 그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기 중 두 세 날이 마음에 남다른 느낌이나 생각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그런 날들 사이를 지나며 살았다는 게 기쁩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또 있고자 하는지.. 그리하여 어디로 향할 때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고마운 분의, 삶의 속살이었습니다.

 

 

1938년 10월 2일(일요일) 비

날 밝기 전 청량리역으로 향하다. 귀경하시는 모친님을 맞기 위하여. 역에서 입장권 파는 이가 불친절하고 불성실하여 말다툼 끝에 차표 판매구의 유리창을 나의 주먹으로 파괴하는 살풍경을 초래하였다. 단, 열차 도착 전 5분까지 판매구를 열지 않았다는 것과, 열차가 없다 또는 연착이라는 등 거짓말을 한 것 등으로 사건 발단의 책임이 모두 판매계원에게 있었음이 명백하여 유리창 변상 요구도 취소되고 우리 부부의 입장료도 안 받는다고 해서 일단락되다. 예수의 결전 같은 이 사건을 보고 일반 승객들이 심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청량리 역원들의 횡포와 태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심지어 청색 제복 입은 철도 품팔이꾼까지 나에게 접근하여 찬사를 말하면서 나의 행동을 지지하였다...

 

1940년 8월 25일(일요일) 맑음

아침 후에 아이들이 떠들어 몹시 때려 주고 생각하니, 오늘이 주일이요 또 너무 지나쳤다. 회한 또 통회. 오호 언제나 아비 노릇 할 터인고.

 

1940년 11월 19일(화요일) 맑음

장남이 고무줄로 만든 새총으로 잘못하여 지하실 유리창을 깨뜨렸는데, 원칙으로 하면 책망 받아야 할 일일 터이지만, 우리 집에 팔매질하게 된 남자아이가 성장한 것이 경사가 아니냐고 가족의 뜻이 결정되어 파손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사랑으로 보면 세상 범사가 다 좋은 일이다.

 

 

세 날 모두, 직간접적으로 가정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첫날 사건의 배경이 귀경하시는 모친을 맞이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똑같이 반응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맞이하러 가는 맑고 선선한 마음에, 불의함이 크게 두드러진 자극을 주었던 거였습니다. 맑고 선선한 마음은 오히려 불의함으로 크게 고통을 겪으며 작동합니다. 역무실 창구 유리창을 박살 내지 않는 방식으로 좀 더 원만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은, 벌써 가련합니다. 유리창을 깨뜨리는 김교신 선생의 주먹질에서, 더럽혀진 성전의 기물들을 내던지는 예수님이 겹쳐지는 건, 김 선생에 대한 지나친 추앙일까요? 저는, 가정에서 진실로 맑고 선선할 수 있다면,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실천적 참여는 더 선명해질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도, 일요일 아침을 분노와 짜증으로 채웠던 젊은 시절이 선명합니다. 주일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과민한 집착, 혹은 주일 설교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는 예민한 욕심에 기대어, 다른 더 중한 것들을 희생시킨, 우상숭배였습니다. 주일마다 가정이나 소그룹이나 때로는 동네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던 김교신이, 아침에 떠드는 아이들을 몹시 때렸다는 이야기는 위로의 선물입니다. 동시에 새총으로 지하실 유리창을 깬 장남의 행동을, 장남 편에서 해석하려 했던 가족들의 모습은, 애틋하고 따뜻한 선물입니다. 그날이 일요일이 아니어서였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8월의 통회를 11월까지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우리도 김교신의 그런 두 세 날 사이를 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다시 의지적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게 있습니다. 그를 통과한 모든 일상이 오늘까지 우리를 기분 좋게 자극할 수 있는 중대한 이유는, 그가 중학교 박물교사 직을,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경 교사 직을, 그 누구보다 소록도 지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었던 성서조선 잡지기자 편집홍보발송발행인 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 안에 견고하게 세워진, 가정의 힘 위에서 건실하게 수행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기의 상 당부분이 자녀 어머니 아내 가족 이야기였던 걸 보면 잘 알게 됩니다. 그의 뜨거운 예수 사랑은 진짜였습니다.

 

 


영상이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