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보는 법

하루 종일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할 것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 히11:23-

 

언젠가 성경공부 모임에서 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 우리 아이들은 저를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온종일 자기들을 따라다니며 화내고 잔소리 하는 엄마로 인식해요. ’ 그러자 다른 엄마들도 일제히 ‘우리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우리 아이들 눈에 어떤 엄마로 비쳐질까 자문해 보니, 칭찬과 격려보다 야단과 잔소리가 더 많다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 후 되도록 아이들에게 ‘안 돼! 하지 마! 넌 왜 그러니? 이것도 못해!’라는 말보다, ‘ 잘했어! 네가 자랑스러워! 네 생각은 어떠니? 고마워’라는 말을 더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6살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 엄마는 너한테 예쁜 말을 더 많이 해? 안 예쁜 말을 더 많이 해?’ 라고 물었더니, 그날따라 딸아이가 ‘ 안 예쁜 말이요’ 라고 충격적인 답을 하는 겁니다. 그래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딸아이가 느끼는 현실적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왜 많은 엄마들이 하루 종일 아이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화를 내는 걸까요? 사실 모든 엄마들은 나름대로 ‘이상적인 아이’에 대한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에 자기 아이가 맞추어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고, 심지어 낳아준 부모와도 다른 존재입니다. 아이가 엄마가 정해놓은 틀에 ‘딱’ 맞아 떨어지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엄마의 기준에 부합되는 아이란 1000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한 ‘예외’인데, 모든 엄마는 우리 아이가 그 ‘예외’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아이가 하는 짓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슬리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무슨 짓을 하든 허용해주고 방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정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 심리학자이자 상담가인 미리엄 아다한은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 준 경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떼를 쓰고 잘못된 요구를 하는 아이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부모가 엄격하게 제재하고 바운더리를 정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자녀양육 전문가들이 내놓는 처방들이 사실 아이 중심(child-centric)의 방법에 치우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 중심의 처방은 물론 도움이 되는 면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이는 싫든 좋든 ‘부모의 권위와 훈계’로부터 삶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부족하고 심지어 악하더라도 그렇습니다(마7:11). 하나님이 자녀에게 그들을 양육하도록 허락하신 권위자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틀에 아이를 맞추는 것도 아니고, 아이 중심도 아니라면, 도대체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바른 길인 걸까요? 우리는 그 길을 성경 속에서 찾아서, 현실 속에 부단히 적용해야 합니다. 대표적 예가 모세의 부모입니다. 모세는 역사상 최고의 선지자이고, 위대한 지도자며, 이스라엘의 해방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은 그 모세 이전에 모세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부모에 대해 성경은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레2:1-2)

 

이스라엘 인구 억제를 위해 파라오가 모든 남자 아기를 나일 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모세의 부모는 왕명을 거부하고 석달간 아이를 숨깁니다. 그 이유가 ‘잘 생긴 아이임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쓰인 ‘잘 생긴(토브)’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고 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보고‘ 하나님도 얼굴 보고 사람 차별하시는구나’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모세의 부모가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아들을 보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믿음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부모 됨의 길, 자녀양육의 근본은 모세의 부모처럼 끊임없이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의 '아름다움(토브)'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본다는 게 그럼 구체적으로 뭘까요?

 

첫째는 세상의 기준으로 자녀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배자 파라오가 정해 놓은 틀에 우리 아이를 맞추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 얘 공부를 그렇게 시켜가지고 어떻게 요즘 같은 경쟁 시대에 살아남겠어?’ ‘ 아이를 성공시키려면 적어도 영어유치원은 보내야지!’ 이런 옆집 엄마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과 틀, 프레임'에 자녀를 밀어넣기를 과감히 거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 아름답다(토브)’고 한 것은 모세가 특출한 외모를 타고 났거나, 대단한 재능을 보여서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언약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존귀하고 아름답게 본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남들처럼 공부를 잘하거나, 남보다 앞서는 특출한 능력이나 재주가 없어도 우리 자녀는 그 자체로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것을 부모가 믿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를 끊임없이 칭찬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울 수 있습니다. 그런 부모의 믿음 안에서 모세 같은 위대한 인물도 길러지는 겁니다.

 

 

셋째는 모세의 부모처럼 자녀를 ‘구원의 갈대상자’에 담아 세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역청을 바른 갈대상자(Ark/방주, 히브리어 테바)를 준비해서 그 속에 아이를 담아 강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다른 부모처럼 위험한 세상 물결에 그냥 아이를  던져 버리지 않고, 구원의 방주(테바/Ark)에 담아서 보낸 것입니다. 우리도 자녀를 구원의 방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아서 세상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자녀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자녀를 기르고, 부모의 능력과 학원의 도움이 아니라 구원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에 자녀를 맡겨야 합니다.

 

오늘날 믿는 가정의 부모들도 관심있게 주고받는 ‘교육 정보’는 세상 부모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느 학원, 어느 강사가 좋다더라, 이 시기에는 아이에게 뭘 시켜야 한다더라, 이런 세상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아이의 인생을 내가 컨트롤 하겠다'는 부모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아이에게 이 시기에는 ‘어떤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부모 된 우리의 시선과 인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엄마가 될 것인지, 아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주는 엄마가 될 것인지, 그 차이는 하나님의 눈과 믿음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서지현 사모 ( 가정의 힘 교육위원, 일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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