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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는 이것이다 (2)

하브루타의 역사적 배경

하브루타는 이것이다 (2)

김진산 박사 

 

하브루타는 유대인들의 대화방식이고 삶의 문화이다. 유대인들은 친구와 짝을 지어 주어진 토라 혹은 탈무드를 함께 읽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반박하거나 동의하면서 자기 주장을 펼쳐나간다.

 

그렇다면 하브루타 대화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브루타의 역사적 배경을 찾아가면서, 한번쯤 들어봤을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하고, 현재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하브루타와 히브리어 하베르가 동일하다는 점부터 살펴보겠다. 아람어 하브루타는 친구 혹은 친구의 우정을 의미하는데, 하베르는 오늘날에도 아주 가까운 사이의 친구를 가리키거나 심지어 연인을 하베르(남성) 혹은 하베라(여성)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회원들을 하베르라고 불렀으며 성경해석이나 율법준수를 따르는 사람을 부르는 용어로도 사용했다.

 

Image by Tom Gordon from Pixabay       

바리새인들과 하베르(하브루타)의 역사 

 

 

바리새인들과 하베르 이야기는 에스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586년 바벨론 제국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간 이후 예루살렘 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살았던 곳곳에 성전을 대체하는 예배 처소(회당, synagogue)가 생겼으며 성전제사를 대신하는 성경 필사, 성경읽기, 성경해석 등이 유행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BC 539년 바벨론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던 포로민들을 자기들의 본토로 돌려보냈으며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을 찾도록 했다.

 

고레스 왕의 유대인 귀환을 발표한 이후 100년이 지나 등장한 에스라 시대의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새로운 종교적 체계를 세웠다. 이 새로운 종교적 체계는 성경읽기와 성경해석이 중심이었다.

 

 

  Image by falco from Pixabay       

 

이후에 산헤드린(Sanhedrin)으로 발전된 유대교의 최고 회의(the Great Assembly)가 만들어졌으며 유대 사회 곳곳에 회당(synagogue)이 세워져 성경을 사회적 삶 안에 해석하는 일에 집중했다.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이 본격적으로 유대 땅으로 밀려들자, 유대 사회의 귀족세력들은 헬레니즘에 열광하며 성전제사와 율법준수를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후계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으며 유대 땅은 프톨레미와 셀류키드 왕조가 번갈아 가며 통치했고 유대의 헬라화는 더욱 가속화했다. 셀류키드 왕조의 악랄한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제우스 신전을 세워 돼지를 바치도록 하는 불행한 일마저 일어났다.

 

이때 ‘하시딤’이라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안티오쿠스 4세의 군대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켜 성공을 거두었다. 마카비 혁명(BC 167-164년)이라고 불리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반란은 헬레니즘을 몰아내고 성전제사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성경읽기와 성경해석에 더욱 열을 올리며 유대교의 확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Image by FotoRieth from Pixabay      

 

마카비 혁명의 성공으로, 마카비 가문의 후손인  하스모니안 왕조가 들어서고 그 왕조를 뒷받침하는 세력이 등장했는데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베림(하베르의 복수형)을 중심으로 회당을 이스라엘 전역에 세워갔으며 성경읽기와 해석, 그리고 율법준수에 열을 올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베이트 미드라쉬’라는 학당을 열었으며 어릴 때부터 하베르, 즉 토라를 공부할 친구를 만들도록 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사울이나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유학하러 왔을 때 바로 이 학당에서 공부했었다.

 

  

 

이처럼 하브루타의 시작은 성전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바벨론 포로 시대였다. 희망을 잃어버린 포로민들은 율법을 읽고 함께 해석하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하나님의 때를 간절히 기다렸다. 특히 포로 시대 이후 태어난 다음 세대들은 성전제사보다 율법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토론하는 것 중심으로 신앙을 형성하고 자라났다.

 

이러한 하브루타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통찰과 도전을 준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병으로 함께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또한 많은 교회들은 다음세대가 궁금해하는 다양한 사회적 질문들에 대한 해석과 토론의 장을 제공하지 못한 채 다음세대를 급격히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은 예배의 하베림, 즉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면 성경의 하베르, 즉 짝을 만나 성경을 읽고 나누며 토론하는 하브루타 문화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기이다.

 

*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선교회의 대표이다.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교에서 구약성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예루살렘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20년 동안 이스라엘 현지에서 히브리어와 이스라엘의 지리, 역사, 문화 등을 연구했다. 2020년부터 한국IFCJ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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