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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성경 읽기

발달 장애 아들과 7살 딸아이 아빠의 가정 성경 읽기

배준완 목사 (일원동교회)

 

언젠가 EBS 교육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학년 전체에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했더니 아이들이 현저하게 욕이 줄고, 교사나 급우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어휘력과 이해력을 비롯해 전반적 국어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학교의 고전 읽기 운동이 가정에까지 확장되어, 온 가족이 모여 고전을 읽고 서로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가족 간의 유대를 쌓고 인성교육을 실천한 사례들도 있었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문해력과 주도성, 삶을 대하는 자세가 훨씬 성숙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부모라면 혹 할(?) 내용이다. 그 아이들이 읽는 고전은 논어, 공자, 플라톤, 톨스토이, 탈무드 같은 동서양의 고전들이었는데, 그중에는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도 (어린이용이긴 했지만) 포함되어 있었다.

 

고전이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나 무게가 변하지 않는, 세월의 검증을 거친 책들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분명 현존하는 최고의 고전이다.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모세와 구약 선지자들의 글이 훨씬 더 앞선다. 성경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며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지혜의 원천이 되고 있는 놀라운 책이다. 하지만 성경은 단순한 고전의 위치를 넘어선다. 성경은 인간과 사회, 역사와 자연, 온 우주 만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독특하고도 일관된 관점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창조주의 숨결이 담긴 책으로서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하신 성령께서 오늘도 성경을 통해, 성경과 함께 일하심으로,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그 책의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표준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여 온전하게 성장시키는 책이다(딤후 3:15-17).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잘 읽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는 문해력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독서활동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책보다 훨씬 쉽고 몰입도 높은 미디어들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조차 다 보기 지겨워 유튜브로 주요 장면만 골라보는 시대에, 어쩌면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활동 자체가 ‘반시대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반시대적’ 성경 읽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의 동반자’들이 필요한 시대다.

 

가정은 성경을 함께 읽고, 이해하고,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삶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적용하고 살아가기에 가장 최적화된 세팅이자, ‘삶의 공동체’이다. 학교나 교회, 직장도 그런 삶의 공동체가 될 수 있지만, 가정이 가장 핵심이고, 다른 모든 것을 연결하는 중심이다. 가정에서 성경읽기가 살아나면, 교회의 성경 읽기가 더 풍성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내고, 저항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훨씬 강력해질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이 아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이 실천했던 방법이다. 가정에서 가장이 성경 읽기를 주도하고,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해 주던 시기에 교회는 능히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었다. 세상을 변혁하는 힘은 오직 말씀에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삶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으면 거꾸로 세상이 우리를 읽을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변혁'(transform)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순응'(conform)시킬 것이다.

 

 

가정세움학교를 시행한 후, 가정 안에서 질서가 자리 잡히게 되자,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가 가족들이 모여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엔 발달장애가 있는 큰 아이와 13살 터울의 늦둥이 딸이 있는데, 두 아이가 각각 18살, 5살 때부터 성경 읽기를 시작했다. 가정세움학교를 하기 전에는 목사 가정인 우리 집도 쉽게 엄두를 못 내던 ‘가족 성경읽기’였다. 처음엔 가족이 함께 잠언부터 읽었고, 그다음은 창세기와 시편, 짧은 서신서들과 역사서들을 읽고, 이후 출애굽기를 (지나 레위기를 끝내고 지금은 민수기를... ) 매일 한 장씩 읽고 있다. 잠언은 이해하기 쉬운 짧은 경구들이 있어서 생활 속에 당장 적용하기가 좋았고, 창세기와 역사서는 흥미로운 인물들의 내러티브가 나와서 막내가 (만화 성경/드라마 바이블과 비교해가며) 무척 좋아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큰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아빠가 읽어주면 큰 소리로 따라 읽는 방식으로 같이 읽는다. 막내는 처음엔 글을 몰라서 따라만 읽다가, 성경을 읽으며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 성경 읽기가 되자, 아이의 독서량 전체가 엄청 늘어나는 부수적 효과도 누린다.

 

 

한번은 출애굽기를 읽다가 ‘보상법’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그래서 ‘양 한 마리와 소 한 마리가 있었대. 그런데 어떤 도둑은 양을 훔쳐 가고, 다른 도둑은 소를 훔쳐 갔대. 양을 훔친 도둑과 소를 훔친 도둑 중 누가 더 큰 벌을 받아야 될까?’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워 했고, 성경에서 ‘소를 훔친’ 도둑이란 답을 함께 찾아냈다. 그러면서 더 큰 죄는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가중처벌에 대한 원리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아이는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다시 들려달라고 했다.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7살 아이라도 단순한 질문과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을 만큼, 성경은 단순하지만 깊이 있고 풍부한 책이다. 이런 대화들이 쌓여갈 때,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상과 사람과 사회와 스스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란 고전적인 뮤지컬 영화가 있다. 주인공인 가난한 유대인 아버지가 부르는 <내가 만약 부자라면 If I were a rich man>이라는 유쾌한 명곡이 있는데 마지막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만약 부자라면 나는 회당에 앉아 기도할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충분할 것이고, 아마 회당 동쪽 벽 자리(가장 명당)에 앉을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학식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성경을 여러 시간 동안 토론할 수 있을 텐데.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일이지(That would be the sweetest thing of all).” 가난한 노동자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하루 종일 앉아 성경을 함께 배우고 토론하는 일이라고 소원을 부르는 장면이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모른다. 우리 가정이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토론하며, 말씀이 열어주는 영원의 빛으로 힘겨운 오늘의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헤쳐갈 수 있다면, 그런 생명력과 영감을 부모와 자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달콤한 일이 또 있을까.

 

 

유대인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인간은 책으로 향한 존재이다. 물 없이, 잠을 자지 않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책 없이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염두에 둔 책은 바로 책 중의 책인 성경이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우리 삶을 해석해 주고,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바른 안내판과 지도, 불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듯, 우리 가정을 비추는 말씀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아버지들이(그리고 어머니들도) 다시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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