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사모(가정의 힘 사무국장)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태어난 아이들을 불안한 세상에서 지켜내는 것, 나아가 약간 이끌어준다는 것은 한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이라고 확신한다.” 유대계 독일 문학가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부모님 대부분은 이 말에 동의했던 거 같다. 그러나 요즘 세대들은 결혼과 가정, 자녀 출산 앞에서 손익계산서를 더 열심히 두드린다. ‘이 결혼이 나에게 정말 이익일까? 괜히 결혼해서 나만 손해 보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게 아닐까? 아이를 가지면 내 인생은 이제 끝나는 게 아닐까? 아이를 키우느라 부부 중 한 사람의 커리어가 멈추면, 돈 들어갈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인생의 중반을 어떻게 살까?’ 행복한 가정에 대한 기대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 모든 시대적 불안을 뚫고, 사랑해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믿음의 결단과 희생까지 해낸 부부들에게 ‘잘했다, 대단하다’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시대는 당연한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야말로 한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향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디딘 것이리라! 문제는
독수리기독학교의 가정과 함께 하는 교육 이윤석 목사 (독수리 기독아카데미 연구소장, 가정의 힘 교육위원) 독수리기독학교는 “탁월한 영성, 성숙한 인성, 뛰어난 지성, 그리스도의 군사를 역사 속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갖고 있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영성, 이웃과 어울리며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성, 현대 사회의 폭발적인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성을 균형적으로 갖춘 인재, 거기에 더하여 역사의식과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진 인재, 잘 훈련된 군사와 같은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학교의 목표다. 그동안 한국의 공교육 체제는 영성, 인성, 지성의 균형적 교육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인 기독교 신앙 교육이란 불가능하고, 적극적인 인성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지성 교육에 치우쳐 있지만 이마저도 학교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학생들은 선행학습과 과다한 사교육 의존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공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캐치 프레이즈가 표방하는 것과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독수리기독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의 원리가 바로 ‘학원과 함
안혜성 집사 (가정의 힘) 요즘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작은 화이트보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과 밥 먹기 전에 함께 신나는 목소리로 읽는 짧은 성경구절이 씌여있는 보드입니다. 말씀이 바뀌는 주기는 보통 일주일인데 그 정도 기간이면 아이들은 금세 외워버리고 후다닥 읽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번 주의 말씀은 가정세움학교의 핵심 말씀 중 하나인 신명기 6장 5절 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얘들아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니?”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거요!” “순종하는 게 뭔데?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순종이 뭘까?” “하나님 말씀 외우는 거요?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는 거요!” “그것도 물론 맞아.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너희들은 힘껏 놀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마음으로 감사히 하는 모든 것들이야. 만일 하나님께서 공부 1등한 사람만 내 자녀로 삼아야겠다 하셨으면 세상엔 하나님 자녀가 몇 명 없겠지. 그렇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고 하셨거든. 마음을 드리는 건 어린이인 너도 할수 있는 일이야.
(주)도움과나눔 최영우대표. 가정의힘 교육위원 1960년대 초 부모님은 경남 의령에서 결혼하고 나를 낳고 난 이후 바로 부산에 정착했다. 그야말로 숟가락 하나 들고 감행한 이농이었다. 팍팍한 살림에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큰 아들인 나를 외가가 있던 의령군 백암으로 보냈다. 3-4살에서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외할머니와 이모들 곁에서 자랐다. 나이 어린 이모들이 장난이 심했다. 외할아버지의 담배대를 꼬마에게 빨게 했다. 어른들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점방(구멍가계)에서 사준 눈깔사탕을 이모가 약탈(?)하려고 해서 내가 집어 던졌던 기억이 난다. 대청마루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깔사탕.. 큰 사랑을 받았다. 또래 동네 아이들과 함께 머리에 부스럼이 심해져서 마을에서 집단으로 5일장에서 사서 발라준 피부약이 군데군데 흰머리를 만든 것은 할머니의 아픔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흰머리가 부끄러웠다. 나는 초등학교 내내 외할머니가 보내 준 검정깨를 먹어야 했다. 할머니는 그 때문에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 마침 그 동네에 외가 사랑방에서 시작한 작은 교회가 활발한 상태였고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교회를 다니셨다. 할머니 등, 교회 가는 밤길의 정자나무, 교회
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기드온과 그의 아들 아비멜렉을 보면,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그대로 답습하면서, 아버지가 남긴 믿음의 유산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는 아들의 모습.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일이 아닐까 심히 염려 됩니다. 어쩌다 이스라엘의 ‘큰 용사’였던 기드온에게서 아비멜렉 같은 자녀세대가 나왔을까요? 우리는 이 일을 교훈 삼아 어떻게 지혜롭게 다음 세대를 일으켜 세워야 할까요? 먼저, 우리 세대의 잘못이 다음 세대로 되물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스스로 뿌린 씨앗이 거둔 결살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뿌린 악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을 넘어선 자기확신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전쟁에서 300명의 적은 숫자로 대승을 거둔 후 지나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두 왕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잔인한 보복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과 자기 확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은 자기 한계를 알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지만, 자기 확신은 쉽게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 주위를 맴돌면서 자녀의 작은 필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거수일투족 세심하게 신경 쓰는 헌신적인 부모다. 과연 그런 부모의 극진한 보호를 성인이 된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양육법에 감사를 표현할까? 미국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에 올라간 이 질문에 2천개가 넘는 답글이 달렸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호소한 것은 감사가 아니라 고통과 답답함이었다. 지속적인 악영향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조종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요” “저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심지어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제가 감시당하고, 관찰 받는다는 느낌이 싫어요.” “제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일하든지, 저는 제가 무언가를 망쳐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까 계속 두려움을 느껴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마비된 것 같아요” “저는 자라오면서, 저의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불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아요.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비정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해요.” “저는 집에서 나온 지 수년이 지났지
하브루타는 이것이다 (2) 김진산 박사 하브루타는 유대인들의 대화방식이고 삶의 문화이다. 유대인들은 친구와 짝을 지어 주어진 토라 혹은 탈무드를 함께 읽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반박하거나 동의하면서 자기 주장을 펼쳐나간다. 그렇다면 하브루타 대화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브루타의 역사적 배경을 찾아가면서, 한번쯤 들어봤을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하고, 현재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하브루타와 히브리어 하베르가 동일하다는 점부터 살펴보겠다. 아람어 하브루타는 친구 혹은 친구의 우정을 의미하는데, 하베르는 오늘날에도 아주 가까운 사이의 친구를 가리키거나 심지어 연인을 하베르(남성) 혹은 하베라(여성)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회원들을 하베르라고 불렀으며 성경해석이나 율법준수를 따르는 사람을 부르는 용어로도 사용했다. Image by Tom Gordon from Pixabay 바리새인들과 하베르(하브루타)의 역사 바리새인들과 하베르 이야기는 에스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586년 바벨론 제국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간 이후 예루살렘 뿐 아니라 유대
하브루타는 이것이다 (1) 김진산 박사 유대인의 종교 교육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최근 자주 회자되는 내용이 하브루타 교육이다. 특히 한국 교육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하브루타 교육은 ‘질문이 있는 교실’ ‘질문을 잘하는 똑똑한 우리 아이’ ‘부모와 자녀의 소통’ 등 질문이 있는 토론문화를 활성화하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토론을 위한 하브루타 교육이 아니라 학업성취나 경쟁우위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고 있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알려진 하브루타 교육은 유대인의 성공신화를 따라 자녀들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열망때문에 교육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교육학자들은 하브루타 교육에 대한 연구물들을 내놓고 있지만 유대인의 종교와 문화, 전통과 역사 등을 교육과 연관하여 창의성 교육 체제 관점에서 연구하고 분석한 논문이나 저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 내용도 단편적이며 현 교육 시스템에 한정되고 있다. 종교와 문화,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하는 유대인들은 쉐마교육, 절기교육, 가정교육, 회당교육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창의성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유대인의 창의적인 사고나 삶의 양식은 수천년 동안 대를 이어 가르치고 전수하고 있
아이를 키우다보면,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입니다. 자칫 감정이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무조건 나무라기만 하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도한 훈육이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자녀를 책망 할 때 항상 따뜻한 사랑의 말을 샌드위치처럼 앞뒤로 감싸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너는 도대체 왜 맨날 그 모양이니?’ 가 아니라 ‘아빠는 네가 훌륭한 아이라고 믿어. 그런데 이번 행동은 평소 너답지 않구나’ 이런 말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끔한 훈육 뒤에는 반드시 사랑으로 다독거려 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원칙과 교육적 목표보다, 감정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고 단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적해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경고의 강도가 점점 강해집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의 언어가 베여있습니다. 유다의 교만을 지적하시면서도, 날이 저물기 전에 따뜻한 집과 쉴
최영우 대표(도움과 나눔) # 장면 하나. 25년 전 신혼 시절. 아내 배 속에 첫 아기가 자라고 있을 때다. 아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다. 고유한 인격을 가진 자다. 좌지우지하려 하지 말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기억하는 생각이다. # 장면 둘. 10년 전 청년시절부터 섬기던 작은 교회에서 장로 피택을 받았다. 장로교육을 받는 1년 동안 한 가지 기도제목이 있었다. "교회의 비밀을 알려주세요." 수개월 동안 어떤 힌트도 없었는데 어느 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비밀이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허무할 만큼 단순한 가르침이었다.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고 내 삶을 바꾸었다. 나는 두 자녀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는 과정, 교회의 비밀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가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모세5경에 가족과 관련된 율법이 왜 그토록 많을까? 가족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구성단위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독교 역사는 가정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부모가 아니라 목사님으로부터 신앙을 배워왔다. 한국 사회의 복음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고, 각 가정들마다 기독교적 가정문화가 형성될 기회가 많지